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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ANCE?

Editor 안하현 Photographer 김경수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발레리노 김용걸의 이야기.

굽히거나 펴거나, 몸의 움직임이 음악과 만나면 춤이 된다. 국립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을 거친 김용걸은 40대에도 여전히 무대를 누비는 발레리노다.

불혹의 나이 마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지만 조급하지 않을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몸과 함께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새로운 도전은 늘 겁이 나고, 늘어나는 피로에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종잇장 같은 옷을 입고 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무용수는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무용수에게 마흔은 대부분 은퇴를 하는 나이다. 하지만 발레리노 김용걸은 40대 중 반인 지금도 현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의 20대는 화려했다.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대한민국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길거리를 다니면 사인 요청이 들어왔다. 내가 최고인 줄 알고 무대에서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가 오래전 전성기를 기록하고자 찍은 누드 사진을 본 적 있다. 전라의 김용걸이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발레 동작을 취하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누드 사진은 <김용걸과 친구들> 공연의 포스터로 사용되며 큰 화제가 됐다. 촘촘한 근육은 나이테처럼 몸에 기록으로 남았다. 열네 살부터 하루 7시간씩 연습한 시간을 몸은 기억한다. 수석 무용수로 활동한 국립발레단을 떠나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으로 간다. 외국인 단원이 5퍼센트밖에 안 되는 콧대 높은 파리지앵 사이에서 그는 동양인 최초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김용걸댄스씨어터와 함께 본격적으로 안무가로서 발을 내디딘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을 방문했다. 3인의 안무가가 의기투합한 <쓰리 볼레로> 공연을 마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전석이 매진될 만큼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열기에 취해 있을 법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몸을 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 전체를 최대한 쭉 늘인 뒤 구부렸다가 허리에서 시작해 손과 발목까지 세세하게 움직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몸의 주인다웠다. 꼼꼼하게 온몸을 감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3년만 더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람은 치열한 연습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며 그의 춤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무대에서 뛰는 일이 쉽지 않다. 연습실에 들른 제자 최원준을 보며 ‘참 잘 뛴다’며 몸 좋은 제자를 대신 찍으라고 농담을 했다. 젊은 발레리노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없는 걸 알기에 지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마흔을 넘으며 생긴 여유와 관록은 그만이 가진 무기다. 어느덧 발레를 시작한 지 25년째. 무대 안팎에서 울고 웃던 일들이 그의 몸에 아로새겨져 또 다른 김용걸의 춤을 만들 것이다.



연습하는 모습을 봤는데 몸을 최대한 젖히고 늘여 온몸의 근육을 다 쓰는 것 같았습니다. 수험생처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는 10시간 가까이 연습을 했어요. 요즘엔 수업하느라 오전에만 연습해요. 예전에는 대충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말 미친 듯이 해요. 짧은 시간 동안 효율을 내야 하거든요. 무용수는 무대에서 몰입해야 하니 흔들리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오랜 기간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을 단련시키는 거죠. 몸 자체가 준비 돼 있지 않으면 춤을 출 수 없어요. 어떤 메시지든 표현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40대가 되면서 생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있나요?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과 근육이잖아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무용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젊었을 때만큼 열심히 해야 해요. 나이를 먹으며 이제 무엇이 제게 잘 맞는지 잘 알아요. 남들이 이랬다, 무엇이 좋다고 하는 말은 참고로만 들어요. 사실 예전에도 알았지만 그때는 욕심나서 다 했거든요. 지금은 누가 무얼 하든 잘 안 봐요.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몰두하죠.

마흔이 넘은 무용수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3년은 더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는데 춤을 출 때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며 뛰는 것에 욕심을 버렸어요. 오래전에 어떤 나이 든 무용수가 한국 무용을 하는 걸 봤어요. 팔이 올라가는 데 1분이 걸려요. 가다가 팔이 탁 떨어지는데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분의 연륜이 자연스레 춤으로 보이는 거예요.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만큼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40대의 저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물론 뛸 수 있는 몸도 아니 지만.(웃음)

누구나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무대에 섰던 <쓰리 볼레로> 공연을 봤는데 유연한 동시에 민첩하고 힘이 있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상반된 모습을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춤인데 알아봐주셨네요. 춤은 결국 움직임의 미학이거든요. 역동적이면서 정적인 게 있어야 해요. 무하마드 알리가 한 말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감동을 주는 겁니다. 공연에서는 37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한 명도 흐트러짐 없이 보이게 연출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탁 터뜨려주자. 결국엔 통했죠.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9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전성기일 때 건너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떠나기 전까지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어요. 문화훈장을 받고 발레 하는 사람 중에 이름 있는 스타급이었죠. 그 정도 대우를 받다 보니 조금 거만했어요. 외국에 가보자며 국립발레단을 박차고 나갔는데 나가서 완전히 깨졌죠. 스포트라이트만 받던 인생인데 하루아침에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연습만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목표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결국에는 동양인 최초로 솔리스트 자리에 올랐어요. 노력이 통했네요. 

단번에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저는 러시아 발레를 배웠는데 프랑스 발레와는 전혀 달라요. 파리지앵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프랑스 사람들은 굉장히 세련되고 도시적이에요. 반면 러시아 사람을 떠올리면 절도 있고 차가운 느낌이 들어요. 무용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파리오페라발레단 영상을 보니 이게 발레구나 싶었어요. 프랑스 발레가 배우고 싶어서 파리로 건너갔죠.

오랫동안 몸에 익힌 습관을 버리고 다시 춤을 정립한 건가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수습생 오디션을 보고 턱걸이로 올라갔어요. 파리가 좋아서 왔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못하겠더 라고요. 부딪히고 깨져서 5개월 뒤에 정단원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군무 자리도 안 주더라고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나날이었어요. 저도 한 성격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단원 중 5퍼센트만 외국인을 뽑는데 그중 제가 한 명이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그들도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 후 솔리스트로 승진했고 2009년까지 파리에서 보냈어요.

 ⓒ한용훈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춤출 때와 안무가로 일할 때 다른 점을 느끼나요?

무대에서 박수 받을 때의 쾌감은 똑같아요.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지는데 최고예요. 누구도 몰라요. 그것 때문에 발레를 그만둘 수 없어요.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싶은 거예요. 단순하지만 내 춤을 보고 그들이 기뻐하니까. 공연을 보고 잘 봤다는 말을 들을 때 그만한 감흥도 없죠. 안무도 마찬가지예요. 안무가의 의도를 관객이 느껴줄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몸을 다치면서 요즘에는 주로 안무를 하고 있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무대로 전환이 돼요. 그 순간에는 길을 걷든 차를 운전하든 멈춰요. 바로 그 타이밍이 있어요. 올 때 확 잡아야 해요. 음악에 맞춰 동작이 함께 떠오르고 어떻게 몸으로 표현할지 생각합니다. 춤에 알 맞은 주제를 담는 게 안무예요.

7월에 선보일 공연이 궁금합니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 스타 초청 공연> 예술감독을 3년째 맡았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공연을 선보이는데 올해 라인업이 굉장해요. 제가 소속된 김용걸댄스씨어터도 축하 공연으로 작품을 올려요. 소속된 무용수들이 바빠서 이번에는 제가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웃음) 직접 안무를 하고 무대에도 설 거예요. <오블리 비아떼Obliviate>란 2인극인데 음악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번에는 그 음악이 저를 당겼어요.

25년 동안 발레를 해온 발레리노에게 춤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몸은 움직이기 위한 구조로 돼 있어요.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퇴화해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안무가란 직업을 가진 저는 춤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항상 보던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무대에 올려놓으면 달라 보여요. 춤으로 표현할 때 무대에 있는 무용수와 객석에 있는 관객이 연결되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춤은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는 사람이니까 결국엔 춤은 사람이에요.

인간의 몸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몸은 포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거든요. 프랑스에 있을 때 친구들과 포옹하며 인사하는 ‘비쥬Bisous’를 참 좋아했어요. 아침에 친구들과 비쥬를 하면 정말 반갑거든요. 오랜만에 외국에서 제자들이 돌아오면 서로 안아 보자고 몸이 먼저 다가가요. 무대에서는 포옹 장면에 조명만 비춰도 사람들이 울어요. 그게 바로 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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