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ALL WE DANCE?

    굽히거나 펴거나, 몸의 움직임이 음악과 만나면 춤이 된다. 국립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을 거친 김용걸은 40대에도 여전히 무대를 누비는 발레리노다. 불혹의 나이 마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지만 조급하지 않을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몸과 함께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새로운 도전은 늘 겁이 나고, 늘어나는 피로에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종잇장 같은 옷을 입고 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무용수는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무용수에게 마흔은 대부분 은퇴를 하는 나이다. 하지만 발레리노 김용걸은 40대 중 반인 지금도 현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의 20대는 화려했다.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대한민국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길거리를 다니면 사인 요청이 들어왔다. 내가 최고인 줄 알고 무대에서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가 오래전 전성기를 기록하고자 찍은 누드 사진을 본 적 있다. 전라의 김용걸이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발레 동작을 취하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누드 사진은 <김용걸과 친구들> 공연의 포스터로 사용되며 큰 화제가 됐다. 촘촘한 근육은 나이테처럼 몸에 기록으로 남았다. 열네 살부터 하루 7시간씩 연습한 시간을 몸은 기억한다. 수석 무용수로 활동한 국립발레단을 떠나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으로 간다. 외국인 단원이 5퍼센트밖에 안 되는 콧대 높은 파리지앵 사이에서 그는 동양인 최초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김용걸댄스씨어터와 함께 본격적으로 안무가로서 발을 내디딘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을 방문했다. 3인의 안무가가 의기투합한 <쓰리 볼레로> 공연을 마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전석이 매진될 만큼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열기에 취해 있을 법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몸을 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 전체를 최대한 쭉 늘인 뒤 구부렸다가 허리에서 시작해 손과 발목까지 세세하게 움직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몸의 주인다웠다. 꼼꼼하게 온몸을 감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3년만 더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람은 치열한 연습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며 그의 춤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무대에서 뛰는 일이 쉽지 않다. 연습실에 들른 제자 최원준을 보며 ‘참 잘 뛴다’며 몸 좋은 제자를 대신 찍으라고 농담을 했다. 젊은 발레리노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없는 걸 알기에 지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마흔을 넘으며 생긴 여유와 관록은 그만이 가진 무기다. 어느덧 발레를 시작한 지 25년째. 무대 안팎에서 울고 웃던 일들이 그의 몸에 아로새겨져 또 다른 김용걸의 춤을 만들 것이다. 연습하는 모습을 봤는데 몸을 최대한 젖히고 늘여 온몸의 근육을 다 쓰는 것 같았습니다. 수험생처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는 10시간 가까이 연습을 했어요. 요즘엔 수업하느라 오전에만 연습해요. 예전에는 대충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말 미친 듯이 해요. 짧은 시간 동안 효율을 내야 하거든요. 무용수는 무대에서 몰입해야 하니 흔들리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오랜 기간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을 단련시키는 거죠. 몸 자체가 준비 돼 있지 않으면 춤을 출 수 없어요. 어떤 메시지든 표현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40대가 되면서 생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있나요?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과 근육이잖아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무용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젊었을 때만큼 열심히 해야 해요. 나이를 먹으며 이제 무엇이 제게 잘 맞는지 잘 알아요. 남들이 이랬다, 무엇이 좋다고 하는 말은 참고로만 들어요. 사실 예전에도 알았지만 그때는 욕심나서 다 했거든요. 지금은 누가 무얼 하든 잘 안 봐요.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몰두하죠. 마흔이 넘은 무용수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3년은 더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는데 춤을 출 때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며 뛰는 것에 욕심을 버렸어요. 오래전에 어떤 나이 든 무용수가 한국 무용을 하는 걸 봤어요. 팔이 올라가는 데 1분이 걸려요. 가다가 팔이 탁 떨어지는데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분의 연륜이 자연스레 춤으로 보이는 거예요.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만큼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40대의 저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물론 뛸 수 있는 몸도 아니 지만.(웃음) 누구나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무대에 섰던 <쓰리 볼레로> 공연을 봤는데 유연한 동시에 민첩하고 힘이 있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상반된 모습을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춤인데 알아봐주셨네요. 춤은 결국 움직임의 미학이거든요. 역동적이면서 정적인 게 있어야 해요. 무하마드 알리가 한 말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감동을 주는 겁니다. 공연에서는 37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한 명도 흐트러짐 없이 보이게 연출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탁 터뜨려주자. 결국엔 통했죠.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9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전성기일 때 건너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떠나기 전까지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어요. 문화훈장을 받고 발레 하는 사람 중에 이름 있는 스타급이었죠. 그 정도 대우를 받다 보니 조금 거만했어요. 외국에 가보자며 국립발레단을 박차고 나갔는데 나가서 완전히 깨졌죠. 스포트라이트만 받던 인생인데 하루아침에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연습만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목표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결국에는 동양인 최초로 솔리스트 자리에 올랐어요. 노력이 통했네요. 단번에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저는 러시아 발레를 배웠는데 프랑스 발레와는 전혀 달라요. 파리지앵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프랑스 사람들은 굉장히 세련되고 도시적이에요. 반면 러시아 사람을 떠올리면 절도 있고 차가운 느낌이 들어요. 무용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파리오페라발레단 영상을 보니 이게 발레구나 싶었어요. 프랑스 발레가 배우고 싶어서 파리로 건너갔죠. 오랫동안 몸에 익힌 습관을 버리고 다시 춤을 정립한 건가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수습생 오디션을 보고 턱걸이로 올라갔어요. 파리가 좋아서 왔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못하겠더 라고요. 부딪히고 깨져서 5개월 뒤에 정단원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군무 자리도 안 주더라고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나날이었어요. 저도 한 성격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단원 중 5퍼센트만 외국인을 뽑는데 그중 제가 한 명이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그들도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 후 솔리스트로 승진했고 2009년까지 파리에서 보냈어요. ⓒ한용훈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춤출 때와 안무가로 일할 때 다른 점을 느끼나요? 무대에서 박수 받을 때의 쾌감은 똑같아요.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지는데 최고예요. 누구도 몰라요. 그것 때문에 발레를 그만둘 수 없어요.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싶은 거예요. 단순하지만 내 춤을 보고 그들이 기뻐하니까. 공연을 보고 잘 봤다는 말을 들을 때 그만한 감흥도 없죠. 안무도 마찬가지예요. 안무가의 의도를 관객이 느껴줄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몸을 다치면서 요즘에는 주로 안무를 하고 있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무대로 전환이 돼요. 그 순간에는 길을 걷든 차를 운전하든 멈춰요. 바로 그 타이밍이 있어요. 올 때 확 잡아야 해요. 음악에 맞춰 동작이 함께 떠오르고 어떻게 몸으로 표현할지 생각합니다. 춤에 알 맞은 주제를 담는 게 안무예요. 7월에 선보일 공연이 궁금합니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 스타 초청 공연> 예술감독을 3년째 맡았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공연을 선보이는데 올해 라인업이 굉장해요. 제가 소속된 김용걸댄스씨어터도 축하 공연으로 작품을 올려요. 소속된 무용수들이 바빠서 이번에는 제가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웃음) 직접 안무를 하고 무대에도 설 거예요. <오블리 비아떼Obliviate>란 2인극인데 음악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번에는 그 음악이 저를 당겼어요. 25년 동안 발레를 해온 발레리노에게 춤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몸은 움직이기 위한 구조로 돼 있어요.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퇴화해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안무가란 직업을 가진 저는 춤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항상 보던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무대에 올려놓으면 달라 보여요. 춤으로 표현할 때 무대에 있는 무용수와 객석에 있는 관객이 연결되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춤은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는 사람이니까 결국엔 춤은 사람이에요. 인간의 몸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몸은 포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거든요. 프랑스에 있을 때 친구들과 포옹하며 인사하는 ‘비쥬Bisous’를 참 좋아했어요. 아침에 친구들과 비쥬를 하면 정말 반갑거든요. 오랜만에 외국에서 제자들이 돌아오면 서로 안아 보자고 몸이 먼저 다가가요. 무대에서는 포옹 장면에 조명만 비춰도 사람들이 울어요. 그게 바로 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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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 한잔

    차가운 잔을 기울인다. 꽃과 과일, 허브 향이 코끝을 맴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잔, 그 안에서 폭발적인 향기와 술의 역사가 함께 찰랑인다. 토요일 밤 9시, 하나둘씩 단골이 모여들고 내 곁에 앉은 한 노인이 진토닉tonic and gin을 홀짝이며 부탁했네. “이봐 젊은이, 내게 추억의 노래 한 자락 들려주겠나? (…)" It's nine o'clock on a Saturday. The regular   crowd shuffles in. There's an old man sitting next to me. Makin' love to his tonic and gin. He  says,“ Son, can you play me a memory?..." _빌리 조엘, ‘피아노맨Piano Man’에서 세 살 무렵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십대에 록 밴드를 시작했지만 빌리 조엘의 무명 시절은 비참하기만 했다. 벌이는 술집에서 피아노를 쳐주거나 동네 술꾼들이 좋아할 만한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받는 일당과 팁이 전부였다. 가사 속의 노인은 옛 노래를 잊어버리듯 젊은 시절을 지워버린 술꾼 이다. 꿈을 이루지 못해 자신에게 화난 사람, 자신이 소설가라며 허풍 떠는 집주름, 사람 대신 고독과 한잔하는 주정뱅이들은 토요일 밤에 달리 갈 데도 없다. 그저 뒷골목 술집에 모여 잔돈푼으로 피아노맨의 노래를 듣는다. 단골의 처지나 피아노맨, 곧 빌리 조엘의 처지나 거기서 거기다. 1973년 무명 가수 빌리 조엘은 왕년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지난날 말고는 떠들 게 없는 동네 술꾼을 노래한 팝 역사상의 걸작 ‘피아노맨'을 내놓으며 지긋지긋한 무명과 가난에서 벗어난다. 골목길 싸구려 술집의 풍경은 빌리 조엘의 일상이었다. 이 풍경 한가운데 자리한 술이 영어권에서 ‘토닉 앤드 진’ 또는 ‘진 앤드 토닉’으로 불리는 진토닉이다. 진토닉. 가장 기본적이어서 가장 인기가 높은 칵테일 가운데 하나다. 진Gin과 토닉워터를 섞고 라임 또는 레몬으로 장식한다. 진토닉 완성! 술과 물이 있을 뿐이다. 주정의 농도는 내가 선택한다. 그러고는 진 특유의 향을 증폭 하는 최소한의 시트론, 라임 또는 레몬이 있을 뿐이다. 시트론의 위상도, 역할도 마시는 자의 기호가 부여한다.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꽂히는 이런 상징성 덕분일까? 진 토닉은 골목길 선술집뿐만 아니라 현대 영문학사상의 거 장으로 손꼽히는 시인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시 극 <칵테일 파티The Cocktail Party> 속에서도 모티프가 된다. 진토닉 풍미와 질감의 핵심은 청량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산층의 깔끔한 파티에 이보다 나은 주류도 없으리라. 에드워드 체임벌린의 아내 라비니아는 어느 날 홀연 사라진다. 체임벌린이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저녁, 파티 속에는 막 눈을 맞춘 남녀가 있고, 모두를 굽어보는 정신과 의사가 있다. 극을 채우는 것은 에로스의 허무다. “아침에 헤어졌다 저녁 때 다시 함께 하며 난로 앞에서 끝없는 수다를 떨며, 부모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 거꾸로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키우며 만족하는” 현대의 권태가 흐르는 동안, 어떤 접점도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을 이어주는 가교가 또한 진토닉이다. 이렇게 익숙한 진토닉의 바탕, <칵테일 파티>에 따르면 “물 한 방울씩만 섞어 순연한 진짜 칵테일”을 만드는 바탕인 진Gin은, 호밀에서 밀, 보리에 이르는 곡물을 원료를 빚어 증류한 뒤, 다양한 부재료로 가향하고 재증류해 제 조하는 무색투명한 증류주를 일컫는다. 이때 진의 기본 적인 향료가 주니퍼 베리, 곧 노간주나무 열매다. 진의 고향은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임에 틀림없다. 그 제법의 발명자가 라이덴 대학 의학 교수인 실비우스Sylvius de Bouve라는 설이 있으나 네덜란드에서는 실비우스의 진 관련 기록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진 관련 기록이 전해진다. 주니퍼 베리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구충제로 썼으며, 14세기 유럽에서는 페스트를 예방하기 위해 활용하는 등 약용 식물로 워낙 유명했다. 17세기 중엽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주니퍼 베리와 진에 이뇨, 해열 작용을 갖다붙이고, 진의 약용주로서 효능을 보다 강조했다. 이후 진은 복잡한 정치외교 관계를 계기로 영국으로 들어간다. 1688년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이 아내 메리 2세와 함께 1만5천의 병력을 이끌고 영국에 상륙한다. 영국 의회는 이들과 손잡고 대권을 남용하고 가톨릭 부흥 정책을 펴 악명을 떨친 제임스 2세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몰아낸다. 바로 영국 역사를 바꾼 명예혁명이다. 1689년 이들은 입헌 왕정을 수립한다. 이때 들어온 네덜란드 병사들은 하나같이 주니퍼 베리 향이 가득한 독한 증류주, 네덜란드 말로 ‘예니버르’를 가지고 있었다. 네덜란드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운다는 명성 혹은 악명이 자자 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더치스 커리지Dutch’s Courage’ 다. 그런데 명예혁명 이후 영국인들은 그 용맹의 근원을 확인했다. 네덜란드 병사들의 수통 속에는 주니퍼 베리 술 예니버르, 영국 말로 ‘진’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진에 만취한 채 전선을 누볐던 것이다. 더치스 커리지가 ‘술 마신 자의 허풍과 지나친 행동’을 뜻하게 된 연유도 여기 있다. 게다가 왕위에 오른 윌리엄은 수입 주류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며 영국 주류 산업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정작 덕을 본 것은 진이었다. 진은 위스키보다 제법이 간단하고 장기 숙성을 하지 않는 술이다. 위스키의 생산량을 금세 능가하더니 18세기부터는 런던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잡았다. 또한 원조 네덜란드 주니퍼 가향주보다 훨씬 깔끔하고 단맛이 덜한 ‘런던 드라이 진’의 전통 을 세워 나가기 시작했다. 진 산업의 성장과 그에 따른 영국 사회상의 변화는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1751년 그림 ‘진 골목Gin Lane’과 ‘맥주 거리Beer Street’에 여실히 드러난다. 진은 싸구려 독주로 하층민에게 풀렸다. 날품팔이들에게는 진이 일당으로 지급되기도 했다. 전선이 아닌 골목에서, 영국 서민은 진에 취해 쓰러졌다. 이에 견주어 맥주는 대용식 역할을 했다. 진이 강한 풍미의 독주였다면, 사람들은 맥주를 통해 유쾌한 생활과 노동의 활력을 얻으며 일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949년 나온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 또한 윌리엄 호가스의 진 이미지를 이어받았다. <1984>에 등장하는 전제국가 오세아니아가 공급하는 술이 바로 ‘빅 토리 진Victory Gin’이다. 한국판에서 ‘승리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빅토리 진의 이미지는 앞서의 설명과 함께 떠올릴 때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빅토리 진 감각은 이렇다. “중국의 화주처럼 독한데다 느글느글하니 구역질 나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었다. 윈스턴은 술을 찻잔에 가득 찰 만큼 따르자마자 쓰디쓴 약을 삼키듯 진저리를 치며 단숨에 마셔버렸다.” - 조지 오웰, <1984> 한편 같은 소설에서, 숨막히는 전제 이전 시대를 기억하는 노인에게 좋았던 시절은 맥주로 형상화된다. “그때는 맥주 맛이 좋았지. 값도 쌌고. 내가 젊었을 땐 월럽이라는 순한 맥주가 있었는데, 값이 1파인트에 4페니였다네.” - 조지 오웰, <1984> 오해 마시길! 그만큼 진은 영국의 일상생활에 깊이 들어 온 술이다. “진은 네덜란드에서 만들고, 영국에서 세련시키고, 미국이 명예롭게 했다"는 말처럼, 진은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고 신대륙에서 칵테일로 꽃핀다. 칵테일의 신세계를 연 진토닉, 또 다른 진 베이스 칵테일 마티니 등이 바로 아메리카에서 꽃피워 전 세계를 매료시킨 진의 변주다. 가장 극적인 마티니도 미국에서 연출됐다. 1933년 미국 금주법이 종결되면서 미국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든 축배주가 바로 마티니였다. 그리고 진은 다시 한 번 세계로 뻗는다. 1987년 출시된, 진의 역사에 견주어 어리다고 할 만한 봄베이 사파이어는 영국 청년에게 진을 돌려주었고, 다시 전 세계에 영국 진을 퍼뜨렸다. 1999년에는 꽃향기가 더해진 고급 진 헨드릭스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둘은 진을 칵테일의 바탕이 아닌, 단독으로 음미하는 술로 견인 하고 있다. “위스키보다 마시기에 편하고, 보드카보다 향이 그윽하다”는 찬사가 더해지고, 젊은 세대가 세계적인 진 소비를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끝없이 유전되는 전통이 진짜 전통, 살아 있는 전통일 것이다. 고향에서는 야성 담은 거친 증류주로 태어나더니, 바다 건너 세월 건너서 ‘드라이’라는 감각을 더했다. 진 토닉, 마티니 등의 변주를 지나 오늘날에는 다시 독립해 소비되는 술로 몸을 바꾸었다. 만만찮은 한 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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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독방에 갇힌 채 하루를 보냈다. 내 몸의 감각에 집중했고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1.5평짜리 방. 그곳에서 최고의 자유를 누렸다. 지난 주말에는 감옥에 갔다. 범죄를 저질렀거나 누군가를 면회 간 게 아니다. 내 발로 독방에 갇히길 자처했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진짜 감옥은 아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행복공장 내 안의 감 옥’은 감옥 콘셉트의 명상 공간이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짧게는 20시간, 길게는 40시간 넘게 독방에서 보낸다. 많고 많은 시설 중에서 왜 감옥일까. 행복공장을 지은 권용석, 노지향 부부는 현대인들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 권용석 씨는 오랫동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파묻혀 보냈다. 건강이 나빠지고 일에 지칠 때쯤 문득 감옥을 떠올렸다. 하루라도 독방에서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바람은 28개의 독방을 갖춘 ‘내 안의 감옥’으로 현실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감금을 전제로 하는 내 안의 감옥은 자율성을 가장 중시한다. 갇혀 있는 동안 방에서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나도 이 여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감옥에 도착해 사회에서의 마지막 밥을 먹었다. 조금만 더 먹을까 욕심이 났다. 수감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했다. 괜히 앞마당을 거닐며 햇살을 받고 바람을 쏘였다. 갇힌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일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이 좋은 날에 감방에 들어가기로 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오후 2시. 방으로 들어섰다. 세로로 긴 방에는 세면대와 화장실이 있었다. 다행이다. 이만 하면 웬만한 서울의 고시원보다 좋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큰 창이 있어 답답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짐을 풀고 휴대폰을 밖으로 내놨다. 이곳에선 책, 휴대폰, 전자기기의 반입이 일절 금지된다. 상사의 문자와 이메일, 허세 가득한 SNS와도 이별 이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달칵. 밖에서 문이 잠기며 속세와 완전히 단절됐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자 감옥에서 13년을 보낸 황대권은 한 평짜리 방안에 혼자 앉아 있으면 자기 몸밖에 갖고 놀 게 없다고 했다. 한 평짜리 방안에서는 내가 우주요,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이 내 몸의 일부로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독방에 들어오자 할 일이 없었다. 나는 그의 말처럼 가만히 누워 나를 장난감 삼아 놀기 시작했다. 온몸을 쭉 뻗어 방의 크기를 재보았다. 팔을 양옆으로 쫙 뻗자 벽에 손이 닿을 1.5평의 크기를 몸으로 익혔다. 집을 떠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머물던 시인 백석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가 말한 그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마침 내 방 앞에도 소나무가 보였다. 나는 오랜 시간 누워 나무와 창밖으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했다.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게 참 잘했다 싶었다. 해가 지고도 밝음의 기운은 오래 대지에 머물렀다. 깜깜해질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았다. 자연의 빛으로 시간을 짐작하고 하루를 소비했다. 변하는 공기의 온도를 느끼며 밤을 맞았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글을 썼다. 엇갈린 인연들에 대한 미련, 스스로에 대한 불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 등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푸닥거리하듯 글을 쓰며 응어리를 풀었다. 밤은 길었고 써야 할 말은 늘어갔다. 새벽이 되어서야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1시간에 한 번씩 울리는 종소리로 얼추 시간을 짐작했다. 오전 7시 30분. 문에 달린 구멍으로 아침 식사가 들어왔다. 지금 할 일은 먹는 일뿐이다. 오물오물 입안에 담긴 쌀죽을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죽이 달았다. 한 번에 하나의 행동만 하니 감각은 더욱 섬세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내 자신과 마주하며 철저하고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했다.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 속에 꼼짝없이 감금된 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고찰한다. 육체마저 감옥에 갇힌다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이중의 감금을 당한 영혼은 더한 고통을 겪거나 반대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갇혀야 드디어 깨닫는 것들이 있다. 비단 바깥의 공기, 햇살과 자유를 일컫는 게 아니다. 신체를 옭아매고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사회는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에 갇혀서야 나의 존재와 감각을 오롯이 느끼게 됐다. 육체가 영혼에게 감옥일지 천국일지는 몸을 쓰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오전 10시, 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나는 세상 속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제와 달리 인생의 수인囚人이 아닌 주인主人이 당당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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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 THE ROAD AGAIN

    모터사이클 엔진이 박동을 시작한다. 길 위에 올라섰다고 일상과 결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계 심장과 굉음, 두 개의 바퀴 위에서라면 내 마음이 그렇다. 완전한 자유다. 세상 모든 것을 뒤로하고 속도를 높일 땐 내가 오롯이 중심이다. 계획도 중요치 않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보낼지 걱정하지 않는다. 두 바퀴 위에선 목적보다 과정을 즐긴다. 목적지는 지도 위의 한쪽 끝, 투어가 끝나는 종착점일 뿐이다. 고글 앞으로 근사한 시야가 펼쳐진다면 어디든 좋은 코스다. 이것보다 더 멋진 풍경을 만나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다 보면 머물고 싶은 풍경과 마주치게 마련이다. 그러니 먼 거리를 달리는 투어에 야영이 빠질 수 없다. 082 1.38kg의 무게와 실리콘 코팅, 빠르고 쉽게 설치할 수 있는 구조로 장거리 투어에 최적화된 초경량 텐트 PCT UL 2 by 제로그램 Zerogram, 나무 감촉과 상판을 나눠 수납할 수 있는 구조가 매력적인 IGT 슬림 테이블 by 스노우피크, 등받이에 포켓과 후크가 달려 더욱 편리한 로우체어 쇼트 아이보리 by 스노우피크, 작은 불꽃이 낭만적인 고효율 소형 가스 램프 녹턴 by 스노우피크, 티타늄 싱글 머그와 티타늄 비어 머그 by 제로그램 장소가 좋으면 어디든 괜찮다. 지붕 없는 거처에는 도심에서 느끼기 어려운 운치가 있다. 준비물도 많이 필요치 않다. 텐트와 코펠 정도면 충분하다. 모터사이클 라이딩은 파트너가 중요하다. 모든 라이딩은 목적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즐기고 싶을 땐 스크램블러만한 장르가 없다. 스크램블러Scrambler는 모터사이클의 본질에 가까운 형태다. 보디 카울이 없는 투박한 스타일에 오프로드 타이어를 달아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잘 달린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두 바퀴와 대화한다. 이런 관점에서 BMW R 나인 T 스크램블러는 최고의 파트너다. 스로틀을 힘차게 감는다. 두 다리 사이에 놓인 복서 엔진이 힘차게 요동치며 기지개를 켠다. 어깨를 쭉 펴고 수평으로 높인 엔진이 만드는 일정한 리듬에 차체가 좌우로 흔들린다. 시트로 전해지는 느낌이 좋다. 잘 조율된 떨림을 온몸으로 받는다. 스크램블러는 보통 느긋하게 달린다. 하지만 가끔 엔진을 더 빠르게 회전시키고 싶은 욕구도 든다. 이럴 때, 두 다리로 모터사이클을 좀 더 적극적으로 잡고, 스로틀 을 비틀어 시원한 가속을 명령한다. R 나인 T 스크램블러가 도로를 점프하듯 움직이자 주위의 모든 사물이 나를 기준으로 정지한다. 속도가 주는 쾌락은 상상을 초월한다. 얌전하게 포장된 도로에서 벗어나 비포장도로로 들어설 때 라이딩의 분위기는 크게 바뀐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스크램블러는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힘으로 제압하면 곤란하다. 모터사이클과 함께 흘러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뒷바퀴가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시원하게 속도를 낸다. 숲속에는 주소가 없다. 이름 모를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운다. 엔진의 열기가 식지 않은 채 거짓말처럼 잠든 파트너 옆으로 텐트를 친다. 내일 아침이면 새소리가 잠을 깨울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귀 끝에서 나부끼던 바람이 이젠 부드럽게 뺨을 스친다. 인적 드문 곳의 여름 밤은 생각보다 서늘하다. 모닥불이 타 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루트를 생각한다. 아드레날린 이후 고요한 평화가 마음을 치유한다. 이 모든 과정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터사이클을 탄다. BMW R 나인T 스크램블러 이 멋진 모터사이클을 보라. 스크램블러는 BMW R 나인T 라인업 중 자유로움을 추구한 모델이다. 업스타일 머플 러와 폭이 넓은 핸들바로 스크램블러식 코드를 멋지게 표현했다. 단지 스타일이 전부가 아니다. 노면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경쾌하게 달린다. 도심의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오프로드에 들어설 때 스크램블러의 진가가 드러난다. 주행 감각은 편안하면서도 매끄럽다. 안정적인 기본기에 훌륭한 라이딩 감각을 더했다. 라이더와 호흡이 좋다. 1170cc 공랭식 트윈 복서 엔진을 통해 110마력(11.8kg·m)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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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UN THROUGH THE CITY

    허공에 그리는 길, 파쿠르 길은 종종 자유의 메타포로 사용되지만, 사실 우리는 길에 갇혀 산다. 현대의 도시에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도로와 골목은 정해져 있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서조차 이정표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복종한다. 하지만 그곳만 이 길이 아니라면? 평면뿐인 2차원에서 입체를 상상하듯 담장과 팻말 위, 지붕과 지붕 사이를 이동하며 스스로 길을 정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계는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무엇이 되리라. 파쿠르Parkour를 즐기는 트레이서 Traceur들은 그런 세계에 산다. 파쿠르는 도시와 자연 환경의 다양한 장애물을 이용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스포츠다. 프랑스에서 탄생했고, 영화 <야마카시> 등을 통해 2000년대 초 국내에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술 교육과 공연 등을 통해 파쿠르 문화를 보급하며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는 김지호 대표는 1세대 트레이서들 중 하나다. 옥상 사이를 넘나들고 창문이 수십 개 달린 건물 벽을 거미 처럼 기어올라 펜스를 뛰어넘는다. 날렵한 곤충이 종횡 무진하는 것 같은 풍경에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스쳐 지난다. 영웅, 초능력자. 무협 영웅,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으나 백일몽으로 치부했던 육체의 강인한 자유가 거기에 있다. “80년대 프랑스 군사 훈련의 기술들이 거리에 적용되며 탄생했어요. 파리 근교에서 두 팀이 결성됐고, 그 여덟 멤버가 파쿠르의 선구자예요. 파리 북 쪽의 사르셀레스에는 숲과 고성이 많고, 남쪽 에브리의 신도시는 거친 콘크리트 정글이에요. 두 그룹이 교류하며 파쿠르를 완성했어요. 사르셀레스에서 정신이 태어났다면 에브리에서는 기술이 발전했죠.” 차라리 탄생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 그 정신과 기술이 대 체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유용하기 위해 강해져라Strong to Be Useful’는 파쿠르 가치관이 있어요. 운동을 위한 운동이 아닌, 내 몸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며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이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죠.” 파쿠르는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도전을 지향한다. 근육을 키우거나 기록을 갱신하는 대신, 저 개울과 담장, 자동차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시작이다. 허공과 지형 지물로부터 동선을 디자인하는 시야를 ‘파쿠르 비전’이라 부른다. 각자의 파쿠르 비전은 실험과 수정을 거쳐 결국 실제 동작으로 이어진다. “파쿠르의 움직임은 걷기, 뛰기, 구르기, 매달리기 등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에서 출발합니다. 거기서부터 영역별로 수백 가지 기술들이 파생되죠.” 파쿠르의 발전은 기술의 세분화에 그치지 않았다. 피트니스와 기교, 스포츠가 결합된 파쿠르는 현재 세계 최대의 스포츠 브랜드들이 주목하고 있는 종목이다. 파쿠르 인구가 60만 명에 달하는 영국에서는 아예 ‘국가 스포츠’로 지정하기도 했다. 시장이 커지면 경쟁과 제도화로 이어지는 법. 그 과정을 막는 것 역시 파쿠르 정신이다. “파쿠르 발전의 원동력은 경쟁이 아닌 이타주의에 있어요. 경쟁을 하면 기준과 규칙이 생기고, 그 순간 자유로움은 파괴되죠. 도심 익스트림 스포츠인 탓에 무모한 경쟁 심리가 큰 위험을 부르기도 하고요.” 한국 파쿠르의 초창기, 자세한 정보도 없이 영화 속 동작을 무작정 흉내 내던 무렵부터 김지호의 인생은 파쿠르를 중심으로 흘러 왔다. 파쿠르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지만, 그의 이정표는 뚜렷하다. “파쿠르는 제 몸과 마음, 인생을 바꿔 놓았어 요. 꿈이 드물고 불안은 흔하고 스스로를 알기조차 어려운 시대, 파쿠르가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길 원합니다.” 아스팔트 위의 파도, 사이드워크 서핑 1964년 캘리포니아 사운드의 선구자 잰 앤 딘Jan and Dean 은 싱글 음반 <사이드워크 서핑Sidewalk Surfin>에서 ‘동네 마다, 도시마다 퍼지고 있는 가장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 하라’고 말했다. 1950년대 초, 파도가 잠든 시즌을 견디다 못한 캘리포니아의 서퍼들은 나무판에 바퀴를 달아 맨발로 육지를 달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글자 그대로 사이드워크 서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동인천의 언덕에서 파도의 경사를 찾는 사이드워크 서퍼 네 사람이 있다. 자유공원 근처 위치한 서프숍 서프 코드의 크루들이다. “이런 게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는데, 완전히 꽂혔어요.” 서프코드의 김지훈은 4년 전 스케이트 보드의 초창기를 다룬 고전 <독타운의 제왕들>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무작정 동영상을 찾으며 혼자 사이드워크 서핑을 익혔다. 그즈음 손님으로 찾곤 했던 서프코드 멤버들과 함께 타기 시작했고, 팀에 합류한 지금까지도 자유공원에서 같이 서핑을 한다. 하지만 잰 앤 딘이나 ‘독타운’의 시대와는 상황이 다르다. 국내에는 사이드워크 서핑을 아는 사 람조차 거의 없고 캘리포니아를 제외하면 해외에서도 이를 즐기는 인구가 많지 않다. 전통의 보드 브랜드 산타크 루즈Santa Cruz도 초창기에 있었던 사이드워크 보드 계열을 내놓지 않은 지 오래고, 사이드워크 서핑을 대표하는 브랜드 샤카스틱스Shakastics 역시 일반 스케이트 보드로 방향을 바꾸는 추세다. 사이드워크 서핑은 스케이트 보딩과 흡사해 보이지만 전 혀 다른 스포츠다. 보드의 몸체부터 스탠더드보다 훨씬 작다. 폭이 좁아 바퀴 사이 트랙의 길이도 짧다. 특별 한정판의 경우 파이버 글라스를 쓰기도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그랬듯 나무판을 사용하는 경우가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단순하고 두꺼운 나무 보드는 묵직함과 복고적 매력으로 마음을 끈다. 서핑 라이프스타일의 매혹을 알려온 서프코드에서 사이드워크 서핑 보드를 직접 수입한 적도 있다. “스케이트 보딩보다도 서핑과 훨씬 관련이 있죠. 기술이나 타는 방법이 서핑이랑 똑같아요.” 서프코드의 디렉터 김인섭이 말한다. 기술을 연습하고 ‘익스트림한’ 도전을 즐기는 스케이트 보딩과 달리, 사이드워크 서핑은 도시의 언덕에서 바다의 물성을 상상한 다. 카빙으로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말 그대로 파도를 타듯 주행하기 때문에 입문하기에도 훨씬 쉽고 안전하다. 기술 연습을 위해 설계된 스케이트 파크보다 경사가 있고 폭이 넓은 도로가 더 적절한 환경인데, 국내에서는 아 스팔트의 질이 좋지 않은데다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코스도 드문 편이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보드를 싣고 다닌 다. “적절한 지형을 마주치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요.” 몸을 낮추고 팔을 뻗어 균형을 잡는 서핑 자세 그대로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진다. 그 모습은 생경하고 아름답다. “우리가 즐기는 모습을 보며 사이드워크 서핑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그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사이드워크 서핑’의 가사에는 ‘아스팔트 애슬릿asphalt athlete’라는 표현이 나온다. 운 좋게 마주친 도로에 환호하며 느긋하게 달리는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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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 IT YOURSELF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하고 같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몸은 익숙함에 젖게 된다. 취미 공간에서 평상시와 다른 일을 하며 색다른 감각에 눈을 뜬다.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시도하면 좋을 취미들. 한 땀 한 땀 바느질의 매력, 가지공방 칵테일바와 가죽 공방이 만났다. 서울 청담동 믹솔로지 바에는 가죽 공방인 가지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바텐더인 김현 대표가 칵테일을 만들고 가죽 공예도 가르친다. 간단한 도구 사용법을 익히고 명함 지갑, 가방 등 작품 하나를 만든다. 미리 준비된 패턴에 맞춰 가죽을 자르고 잇는 수업은 초보자도 쉽게 따라 갈 수 있다. 가죽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느질이 꼭 필요하다. 기성복을 구입하고 세탁소에 수선을 맡기는 요즘엔 일상에서 바느질할 일이 많지 않다. 한 땀 한 땀 눈과 손을 집중해 바느질하자 시간이 훌쩍 지난다. 마음을 어지럽히던 고민도 사라진다. 수업은 오후 6시 이후 저녁 시간에만 열린다. 술을 마시러 왔다가 즉흥적으로 수업을 듣는 손님도 있다. 칵테일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가죽 공예 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더없이 좋다. 나무가 주는 위로, 몽키넛 스튜디오 경쾌한 소리와 은은한 향이 목공소를 가득 채운다. 매끈한 나무를 만지고 진득이 앉아 대패질을 하자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몽키넛 스튜디오는 짜맞춤 가구를 전문으로 만드는 목공소다. 못을 쓰지 않고 목재 사이를 이은 가구는 견고하고 오래간다. 목공은 끌, 대패 등 도구를 갈고 손에 익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길들인 굳은살과 근육은 오래 남아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마음의 근육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 앉아 작업을 하면 우직한 뚝심이 늘어난다. 도마, 테이블, 의자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만들 수 있어 성취감도 크다. 사용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반영할 수 있는 하나뿐인 가구인 셈이다. 깎고 다듬고 자르는 나만의 손길을 거쳐 나무는 새롭게 태어난다. 집에서 만드는 셰프의 요리, GBB키친 요리는 우리 몸의 많은 감각을 사용한다. 매의 눈으로 좋은 재료를 고르고 후각과 미각을 이용해 맛을 보고 안목과 센스를 담아 그릇에 예쁘게 담기까지 온몸의 감각이 총동원된다. 재료를 나르고 불 앞에 서서 팬을 잡을 때도 많은 근육을 쓴다. 요리사에게 튼튼한 체력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GBB키친은 음식과 관련된 놀이터다. 토요일마다 운영하는 브런치 카페에서 셰프의 음식을 맛보고 쿠킹 클래스에서 그 요리를 그대로 배운다. 제철 재료를 다루는 법과 셰프의 요리법이 내 것이 된다. 쿠킹 클래스는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시연 위주로 진행된다.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게끔 동기를 주는 것. 오늘 맛본 브런치 메뉴를 집에서 만들어 보자. 우리집이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서울에서 키우는 꿀벌, 어반비즈서울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멸망할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수분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꿀벌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고층빌딩이 펼쳐지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벌을 기를 수 있다. 어반비즈 서울은 서울에서만 27개의 양봉 공간을 운영 중이다. 안전한 꿀이 먹고 싶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등 양봉을 하는 이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도시 양봉가 과정을 통해 양봉을 배운다. 똑같아 보이는 벌집이지만 여왕벌의 성격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계절마다 벌의 행동도 달라진다. 이처럼 벌의 생태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꿀벌을 기를수록 내가 사는 세계는 더욱 건강해진다. 참여자들은 꿀벌을 기르며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에서 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작은 꿀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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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at is on your mind, sir?

    사진가 김용호와 사업가 피에르 코언 아크닌. 고전과 새로움, 예술과 취향, 생각하고 변하는 일에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두 남자의 마음에는 지금 어떤 관심사가 스쳐가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2017년 6월 15일 오전 10시, 사진가 김용호 얼마 전 교토에 다녀왔어요. 가부키 공연을 보러 가거나 나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적 은 있지만, 그 도시에 제대로 집중해본 건 처음이었죠. 잘 정돈된 도시 곳곳에서 일본 문화 특유의 유미주의적 성향이 엿보였어요. 교토는 오래전 왕이 살던 지역이라 궁궐과 사원이 많아요. 긴 역사를 잘 보존해놓아 이미 지난 시대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죠. 모든 사물은 늘 새롭다는 생각을 새삼 했어요. 오래전 만들어진 것들도, 심지어 내가 이미 경험해 본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여기, 파리스 바에는 15년 만에 왔어요. 친구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아직 분명한데, 오랜만에 보니 또 몰랐던 지점들이 있네요. 저는 늘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삶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죠. 패션 사진, 광고 사진, 파인 아트와 조형까지 이미지와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해왔어요. ‘새로운 시각’은 항상 그 핵심에 있어요. ‘더 좋게’ 보려는 시도는 누구나 하고 있잖아요. 자신의 몸에서 한 번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뒷모습의 누드를 모은 <몸>이 그랬고, 10년째 작업하고 있는 시리즈 <피안>도 그렇죠. 저는 7월마다 연잎 사진을 찍어요. 작업의 시작은 어느 전시였어요. 조선 민화전 에서 연을 그린 그림을 보는데, 저는 그 풍경을 좀 다르게 보고 싶었어요. 물 바깥에서 내려다봐야 하는 연잎을 수면 밑에서 올려다보면 어떨까? 몇 해 전 수중 사진을 찍으려고 다이빙을 배웠는데 그게 도움이 됐어요. 연 뿌리에는 가시가 빽빽 하게 돋아 있어 그걸 헤치고 지나가는 건 노동에 가까워요. 다이빙 슈트가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죠. 땀을 흘리며 진흙탕 한가운데 들어서야 마음에 드는 공간이 나 와요. 사진을 찍다 보면 연잎 아래 그늘에서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죠. 그 순간을 누가 또 알까요. 여기가 지상낙원인가 싶었어요. 어느 평론가가 <피안> 전시를 보고 ‘무중력의 안식을 꿈꾼다’는 문장을 썼는데, 정말 그런 기분이었죠. 지금껏 없었던 감각, 세상에 없었던 이미지를 찾았다는 건 참 기쁜 일이에요. 고고학자들의 즐거움이 그렇겠죠. 저는 최초의 발견자였던 적이 많았어요. 거기에는 얼마쯤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해요. 개인 작업이 아닌 상업 사진을 찍을 때도 호기심은 중요한 키워드예요. 저는 작업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현대카드의 제의로 <우아한 인생> 시리즈를 촬영했을 때도 연구를 많이 했어요. 화폐의 역사와 신용카드의 기원, 특정 시기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죠. 미리 생각해둔 이야기, 예습해둔 지식들, 즉흥적 감정들이 뒤섞이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했던 장면이 드러나요. 얼마 전 어느 평론가가 이어령 선생이 쓴 글을 보내줬어요. “하나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실체론적 해석보다 관계론적 사고로 봐야 한다.” 진중하고 담담하게 하나를 파고드는 사람들을 깊이 존중하지만, 저는 서로 관련된 여러 일들을 하다가 예상보다 흥미로운 결과물을 얻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고 보니 요즘 제 관심을 끄는 것들도 다양하네요. 명품에 대해 깊은 관심은 없지만, 잘 만든 붓펜을 좋아해요. 선물을 포장하거나 글을 보낼 때 대단히 유용한데, 카트리지를 교환할 수 있는 일본 붓을 쓰고 있어요. 후지 필름의 새 카메라로 교토에서 찍은 흑백 사진들도 좋았고요. 이슈 중에서는 싱귤래리티, 즉 특이점에 대한 생각이 많아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60세에 은퇴를 했는데, 싱귤래리티가 시대의 화두가 된 후 ‘곧 내가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며 복귀했다고 하죠. 기업 차원이 아니라도 학자와 재산가들은 이미 그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고 해요. 인간의 지능을 훨씬 능가하는 초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어떤 변화가 올까요?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보다, 미리 공부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시대에 철학적 사고와 인문학의 고전들은 더욱 중요해지죠.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새로운 시각’을 어떻게 이어갈지, 앞으로도 제겐 중요한 문제일 거예요. 2017년 6월 9일 오후 3시, 피에르 코언 아크닌 1981년 한국에 처음 왔죠. 파병 복무 기간을 채우고 난 후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에서의 부르주아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죠. 기껏해야 스물서너 살의 일이었고 그때 저는 내성적이고 불안한 청년일 뿐이었지만, 몇몇 회사를 전전하다 제 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엔 제가 내린 결정인 줄 알았지만 돌이켜보면 영혼이 이끌었던 거예요. 첫 2년은 정말 힘들어서 월세조차 내기 어려웠어요. 그 시간을 거쳐 성공에 이르렀죠. 저처럼 젊은 나이에 나라를 떠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결정을 내려 목표로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예요. 저는 인생을 이끄는 다른 힘이 있다고 믿어요.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을 확신하며 삶에 만족한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한편 정신적인 여로에 마음을 열고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일상에서 실천하는 편이에요. 저는 매 순간 분노와 피해의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요. 자기 안의 부정적 감정들을 비우면 대체로 그 자리에 좋은 것들이 들어와요. 누구든 이런 노력을 할 수 있어요. 그게 가장 좋은 점이죠. 저는 명상에도 소질이 없고, 일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 기 때문에 책상에서, 차에서 짬짬이 할 수 있는 노력이 가장 잘 맞아요. 산이나 절에 들어가서 일주일씩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돼요.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조종 하지 못하게 하고,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 “그건 너 때문이 아니야It’s not about you.”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주인공의 스승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바로 그거예요. 그 순간 극장에서 혼자 미소를 지었죠.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이런 마음을 유지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마케팅이란 스스로를 내세우고 특별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제 안에 좋은 자아와 나쁜 자아가 공존해요. 나쁜 자아는 내가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다며 내세우는 역할이라면, 좋은 자아는 내가 일을 할 뿐이라는 걸 깨닫는 부분이에요. 어떤 일을 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달라요. 뭔가 소유하려고 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죠. 사람이 소유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빌리는 거죠. 지나갈 뿐이에요. 제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시작한 것도 우연한 계기였어요. 사실 저는 전혀 모르는 분야에 도전해도 큰 성공을 이루는 편이에요. 아이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죠. 호기심도 많고요. 자존심이 개입하기 시작하는 건 뭔가를 이루고 난 다음이에요. 완성에 도달하는 동안은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을 느껴요. 사업에선 한 품목이나 서비스를 오래 지속하는 게 중요한데, 이런 천성 때문에 저는 온갖 사업에 손을 댔어요. 그러다 1994년에 칸에서 있었던 면세품 박람회에 갔다가 하바노스 사람들을 만나 무작정 시가 사업을 시작했죠. 시가를 피우지도 않았는데요. 1993년에 처음 하바나에 간 것도 스쿠버다이빙을 위해서였어요. 당시 일하던 회사에서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하바나에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해서 따라나섰죠.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장 비를 갖춰주고는 그냥 바다에 밀어버리더라고요. 그런데 들어가서 몇 번 숨을 쉬고 나니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자재로 되는 거예요. 혼자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 오는 바람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겁에 질렸죠. 중력을 거스르는 세 가지 스포츠가 있는데, 스키나 낙하처럼 떨어지는 종류가 있고, 그 다음엔 다이빙, 마지막으로 스피드가 있어요. 레이싱 같은 거요. 저는 비싼 차를 갖고 싶지는 않아서 모터사이클을 탔죠.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즐겨요. 매일 스쿠터를 타기도 하고요. 무중력 상태에서는 앞서 언급한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에도 매이지 않고 물리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어요. 유치할 수도 있지만 하늘을 나는 꿈을 많이 꿨거든요.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요즘은 스포츠와 음악을 통해 영감을 얻어요.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축구, 럭비,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많이 다치는 바람에 요즘에는 스쿼시를 주로 해요. 산책도 하고… 그리고 음악을 들어요. 음악은 모든 세포를 깨우는 귀한 선물이에요. 자신의 영혼과 공명하는 음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동하면서 마음을 낫게 하죠. 대체로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이 저를 감동시켜요. 베토벤 7번 2악장, 브람스, 슈만 같은 고전들은 물론이고, 한국 노래와 다른 나라의 국가에 마음을 사로잡힐 때도 있죠, 하하. 향기에도 신경을 써요. 향기는 정말 중요한 요소예요. 코는 얼굴에서 죄를 짓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죠. 저는 시가 외에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시가는 긴장을 풀어주고 템포를 조절하게 해줘요. 어떤 것을 완전히 파괴해서 아름다운 것으로 다시 탄생시킨다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삶의 순환이 느껴지죠. 와인도 마찬가지예요. 원료보다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는 몇 안 되는 예 중 하나죠. 한국에 머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제가 떨치려고 하는 분노와 피해의식으로 들끓는 나라지만, 엄청난 아름다움이 있어요. 빛나는 보석이 숨어 있죠. 저는 아름다움이 클수록 그에 반하는 부정적 에너지도 커진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엄청난 분노와 부정적 기운은 한국이 그만큼 아름다운 나라라는 반증이에요. 저는 그 아름다움이 보여요. 저는 사업가가 아니에요. 이 모든 세월을 지나고도, 저는 사업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디에 투자하고, 뭔가를 매입할 기회가 수도 없이 있었지만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소유하려 하지 않았죠. 저는 예술가예요. 저는 예술로써의 사업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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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IMB, WALK, SURF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 변화무쌍한 경사를 오르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그곳에 있어서다. 올라야 할 산은 인간의 승리욕을 부추긴다. 실내 클 라이밍은 합리적인 취미다. 비 오는 날에도 미끄러질 걱정이 없으며, 심지어 어둠이 가득한 밤 에도 운동할 수 있다. 자연과의 교감은 아쉽지만 내가 원할 때 언제라도 몸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 잘 맞는 취미다. 온갖 좋은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며 지루함과 익숙함을 참지 못하 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과 달리 클라이밍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암벽을 해체하고 코스에 변주를 준다. 어제는 쉽게 정복한 산이 오늘은 쉽게 넘지 못할 난코스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암벽 하나 에만도 다양한 난이도의 루트를 두기 때문에 하나씩 정복하는 재미가 있다. 인천 마전동에 위치한 실내 클라이밍장 디스커버리 클라이밍스퀘어 ICN을 찾았다. 개장 당시 약 1652제곱미터(500평)에 달하는 규모는 많은 클라이머들에게 화제가 됐다. 15미터 높이의 암 벽을 포함한 쾌적한 시설이 이곳의 특징이다. 넓은 공간의 백미는 햇살을 받으며 하는 클라이밍이다. 자연광 아래서 이뤄지는 클라이밍은 화창한 날 산에 오르는 것처럼 경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공간은 크게 볼더링Bouldering과 리드Lead 공간으로 나뉜다. 볼더링은 맨손으로 벽에 붙은 돌출된 바위를 잡고 오르는 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클라이밍의 모습으로 등반 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사람의 손만 이용해 벽을 올라간다. 반면 리드는 밧줄을 사용해서 중간 중간 확보물을 설치한다. 볼더링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리드 클라이밍은 두 명이 함께 움직인다. 선발 등반자 뒤에는 후발 등반자가 있어야 한다. 리드 등반을 구경하니 둘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뒷사람은 줄을 넘겨주고 앞사람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줄을 끌며 걱정 없이 암벽을 올라간다. 등반가는 스파이더맨처럼 벽에 착 붙어 몸을 움직인다. 좋은 장비가 필요한 것처럼 좋은 파트너를 구하는 일도 리드 클라이밍에선 중요한 일이다. 실내 클라이밍은 실제 등산으로도 이어진다. 클라이밍을 통해 다져진 근력은 등산을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걸으며 나를 발견하는 길, 트레킹 트레킹Trekking은 자연의 풍경을 즐기며 걷는 일이다. 과거 유럽인들이 대자연을 찾아 아시아를 천천히 걸어 여행한 것에서 유래됐다. 트레킹은 더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해 몸을 재촉하지 않는다. 산과 들의 바람을 유유자적 느끼고 몸이 움직이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느림은 트레킹이 가져야 할 미덕이다. 자연과 교감하며 땀을 흘리는 개운함은 피트니스에서 몸을 만드는 운동과는 또 다른 쾌감을 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말리부Malibu는 아름다운 바다로 이름난 곳이다. 일찍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이들은 호화 별장을 지어 이곳의 경치를 선점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하이웨이 1번 도로를 타면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말리부는 전 세계에서 온 서핑족으로 매년 인산인해를 이룬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산타모니카산맥국립휴양지가 나온다. 약 623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국립휴양지에서 바다와 산, 도시가 한곳에 어우러지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백본 트레일Backbone Trail은 총 길이가 100킬로미터가 넘는다. 트레킹을 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기암괴석과 태평양에 마음이 동할 것이다. 트레킹 중 곳곳에서 만나는 야생화 군락과 폭포수도 눈을 즐겁게 한다. 란치 말리부Ranch Malibu는 트레킹에 최적화된 리조트다. 숙소를 나서면 트레킹 코스가 바로 펼쳐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은 디톡스를 하려고 일부러 란 치 말리부를 방문한다. 건강한 삶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그러나 일상에 치이다 보면 내 몸 하 나 제대로 가누기 쉽지 않다. 시작은 간단하다. 몸을 움직이는 것.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며 다리를 힘차게 걷는다. 걷다 보면 나의 시간이 건강하고 여유 있게 흘러감을 느낄 것이다. 쇼난 가마쿠라, 검푸른 파도 위로 미끄러지다 커다란 파도가 둥글게 몸을 만다. 시시각각 무너지는 파도 위로 서프 보드가 미끄러진다. 격랑 속 에서 서퍼와 보드는 한몸이나 마찬가지다. 사선의 물길이 끝나고 파도에서 벗어나는 순간, 희열 이 심장을 가득 채운다. 서핑은 원래 타히티의 어업 기술이었다. 일종의 고깃배였던 서프 보드가 하와이로 전파되었고, 20세기 초부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핑 문화가 본 격정적으로 폭발한 것은 1960년대였다. 비치보이스의 노래가 빌보드 1위를 기록했고, 쇼트 보드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미국과 호주를 이미 풍미한 서핑이 아시아에 상륙한 건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후였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서핑을 받아들인 지역들 중 하나였다. 호황에 흥청이던 70년대, 일본 서핑의 중심지는 도쿄 남쪽의 쇼난이었다. 쇼난Shonan은 요코하마의 남쪽,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등 해안 도시들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미군 기지가 부른 이국적 분위기와 검은 모래가 덮인 해변들 덕에 쇼난은 서퍼들의 아지트가 됐다. 곳곳에 암초와 하구를 감춘 총 160km의 해안에는 서핑 스폿들이 일렬로 이어진다. 어디를 향해도 좋겠지만, 각별히 추천하고 싶은 곳은 ‘가마쿠라 고등학교’ 스폿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동네 골목길, 기찻길 차단기 너머 탁 트인 푸른 바다, 자전거에 보드를 싣고 바다로 향하는 서퍼들과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덕에 이곳의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다. 아침 일찍 해변에 들르면, 퍼시픽 드라이브인 카페에서 동네 서퍼들과 섞여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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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고 간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한 날부터 귀국 항공편을 알아봤다. 도시를 떠나는 날의 일기장에는 ‘탈출’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일주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Show me the money.” 마라케시에 딱 맞는 문구다. 이 도시에서 모든 것은 돈으로 통한다.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탕헤르Tanger에서 마라케시로 향했다. 구멍만 뚫린 휴게소 화장실을 다녀오자 노파의 손이 다가왔다. “투two 디르 함Dirham(모로코 화폐 단위로 1디르함은 한화 110원 선).” 이따위 시설에 돈을 낸다는 사실이 화장실에서 받은 충격을 쉽게 제압했다. 화장실은 워밍업에 불과했다. 매연과 소음과 온갖 구질구질한 것이 모인 제마엘프나 광장Jemaa elFna Square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도시의 랜드마크인 제마엘프나 광장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원숭이와 코브라, 기인들의 쇼가 펼쳐지고, 음식점과 좌판이 광장을 빼곡히 채운다. 여행자들은 <세계 테마 기행>에 나올 법한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이 동한다. 하지만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른다. 사진을 찍자 상인은 “원 디르 함”을 요구했다. 누가 내게 돈을 맡겨 놓았나? 길을 걷는 내내 “마담, 원 디르함 플리즈”라는 말이 줄기차게 따라왔다. 구걸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고 상점의 물건에는 가격표가 없다. 여행객용과 현지인용 가격은 몇 배 차이가 난다. 이곳에서 나는 걸어 다니는 지갑, 즉 호구다. 온갖 ‘삐 끼’를 물리치고 운 좋게 광장을 벗어나도 숙소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미로 같은 골목이다. 길을 안내해주는 선량한 시민을 믿지 말지어다. 말미에는 “원 디르함”이 라임 처럼 붙는다. 지긋지긋한 호객에 시달린 게 6년 전이니 지금쯤 ‘투 디르함’으로 올랐으려나. 불행하게도 사하라 사막에 가기 위해서는 마라케시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잡상인에게 질려 이 나라에 신물이 나고 멘탈이 나갈 때쯤에는 사막 투어의 호객꾼이 마지막으로 다가온다. “사하라 오케이?” 모르고 떠나면 덤터기를 쓴다. 나는 남들보다 비싼 금액을 냈다. 말이 사막 투 어지 2박 3일 동안 사막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차에서만 보냈단 말이다. 보이는 건 황무지 벌판이다. 또 낚였다 생각할 때 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은 진짜 사막이었다. 햇살에 빛나는 모래와 낙타 행렬이 장관을 만들었다. 단 사막에는 없는 게 많 다. 편안한 침구와 쾌적한 화장실이 없다. 또 하나 편식 하는 여행자도 없다. 정체를 모르는 고기(낙타 고기라고 일행은 추측했다), 향이 강한 하리라Harira 수프와 마른 빵이 저녁 식사로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이마저도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가끔 단어의 의미가 명징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별이 쏟 아지고 바람이 불던 그 밤을 종종 떠올린다. 목동의 노랫 소리에 취한 사람들을 피해 모래 언덕에 누웠다. 세상천지에 나밖에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바람이 채운다. 윙윙 바람이 불고 이따금 힝힝 낙타 울음소 리가 장단을 맞췄다. 나는 이때만큼 고요의 의미를 절절하 게 깨달은 적이 없다. 어쩌면 마라케시의 소음과 매연은 사막의 정적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미움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으르렁거리던 남녀가 한순간 불꽃이 튀고 죽고 못 살던 연인이 불시에 돌아선다. 돌이켜보니 미움은 종종 무지에서 비롯됐다. 조금 더 마음을 열었다면 이 도시를 이토록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매번 잊는 사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부디 다음번엔 든든한 동행자와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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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DAL IT OUT

    나는 한동안 자전거가 인구수보다 더 많은 네덜란드에서 살았다. 정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고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자전거 자물쇠와 안전등을 사고 자전거 규정을 익혔다. 지하철이 없는 도시에서 자전거를 빼놓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매일 자전거를 타느라 첫 일주일은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3개월이 넘자 밤에는 알아서 앞뒤 전조등을 켰고, 방향을 틀 때 손짓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비로소 이 나라에 제대로 정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향살이는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고 여행이었다. 학교에 가거나 장을 보는 사소한 일상과 이웃나라의 국경을 넘는 색다른 여행까지 나의 모든 순간에 자전거가 함께했다. 그곳을 떠나며 자전거를 두고 왔다. 한국에 돌아와 자전거를 사려고 마음먹은 것이 수십 번. 결국 고민으로만 끝났다. 자전거를 놓을 집도 없거니와 주변에는 쌩쌩 달릴 도로도 마땅치 않았다. 자전거가 사라지며 나의 일상 여행은 끝이 나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중략)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 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을 매우 원초적으로 묘사했다. 단순히 페달을 밟는 일로 치부될 자전거 타기가 소설가의 몸을 만나 하나의 철학이 됐다. 사실 자전거 여행은 가성비를 운운하자면 못할 일이다. 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엉덩이를 뭉개며 발에 땀이 나게 바퀴를 굴려야 한다. 욕망과 불신이 넘치는 세상에서 이 일은 꽤 정직한 편에 속한다. 내 몸을 오롯이 써야 하니 꼼수란 통하지 않는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인간은 계속 바퀴를 굴려야 한다.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자전거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는 인간의 숙명을 닮았다. 노동의 대가는 크다. 달리는 자는 매번 여행의 주체가 된다. 차를 탈 때는 지나칠 풍경을 진득하게 목격한다.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빛깔은 오로지 나만의 것. 사람이 달리는 거리를 매번 자동차가 지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가는 곳은 자전거도 달린다. 야트막한 숲속 오솔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본 적 있는가? 길 위에서 여행자와 자전거는 한몸이다. 자전거 여행을 독려하는 소설가는 또 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자전거를 사라. 살아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자전거를 타며 마주치는 즐거움을 아는 이들은 쉽게 둥그런 핸들로 옮겨 가지 않는다. 공유 경제의 영향으로 서울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자전거를 손쉽게 대여한다. 자전거가 없어도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 이제 마크 트웨인의 말은 바뀌어야겠다. “자전거를 타라. 살아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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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ANCE?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발레리노 김용걸의 이야기.

굽히거나 펴거나, 몸의 움직임이 음악과 만나면 춤이 된다. 국립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을 거친 김용걸은 40대에도 여전히 무대를 누비는 발레리노다. 불혹의 나이 마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지만 조급하지 않을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몸과 함께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새로운 도전은 늘 겁이 나고, 늘어나는 피로에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종잇장 같은 옷을 입고 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무용수는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무용수에게 마흔은 대부분 은퇴를 하는 나이다. 하지만 발레리노 김용걸은 40대 중 반인 지금도 현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의 20대는 화려했다.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대한민국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길거리를 다니면 사인 요청이 들어왔다. 내가 최고인 줄 알고 무대에서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가 오래전 전성기를 기록하고자 찍은 누드 사진을 본 적 있다. 전라의 김용걸이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발레 동작을 취하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누드 사진은 <김용걸과 친구들> 공연의 포스터로 사용되며 큰 화제가 됐다. 촘촘한 근육은 나이테처럼 몸에 기록으로 남았다. 열네 살부터 하루 7시간씩 연습한 시간을 몸은 기억한다. 수석 무용수로 활동한 국립발레단을 떠나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으로 간다. 외국인 단원이 5퍼센트밖에 안 되는 콧대 높은 파리지앵 사이에서 그는 동양인 최초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김용걸댄스씨어터와 함께 본격적으로 안무가로서 발을 내디딘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을 방문했다. 3인의 안무가가 의기투합한 <쓰리 볼레로> 공연을 마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전석이 매진될 만큼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열기에 취해 있을 법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몸을 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 전체를 최대한 쭉 늘인 뒤 구부렸다가 허리에서 시작해 손과 발목까지 세세하게 움직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몸의 주인다웠다. 꼼꼼하게 온몸을 감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3년만 더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람은 치열한 연습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며 그의 춤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무대에서 뛰는 일이 쉽지 않다. 연습실에 들른 제자 최원준을 보며 ‘참 잘 뛴다’며 몸 좋은 제자를 대신 찍으라고 농담을 했다. 젊은 발레리노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없는 걸 알기에 지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마흔을 넘으며 생긴 여유와 관록은 그만이 가진 무기다. 어느덧 발레를 시작한 지 25년째. 무대 안팎에서 울고 웃던 일들이 그의 몸에 아로새겨져 또 다른 김용걸의 춤을 만들 것이다. 연습하는 모습을 봤는데 몸을 최대한 젖히고 늘여 온몸의 근육을 다 쓰는 것 같았습니다. 수험생처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는 10시간 가까이 연습을 했어요. 요즘엔 수업하느라 오전에만 연습해요. 예전에는 대충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말 미친 듯이 해요. 짧은 시간 동안 효율을 내야 하거든요. 무용수는 무대에서 몰입해야 하니 흔들리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오랜 기간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을 단련시키는 거죠. 몸 자체가 준비 돼 있지 않으면 춤을 출 수 없어요. 어떤 메시지든 표현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40대가 되면서 생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있나요?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과 근육이잖아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무용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젊었을 때만큼 열심히 해야 해요. 나이를 먹으며 이제 무엇이 제게 잘 맞는지 잘 알아요. 남들이 이랬다, 무엇이 좋다고 하는 말은 참고로만 들어요. 사실 예전에도 알았지만 그때는 욕심나서 다 했거든요. 지금은 누가 무얼 하든 잘 안 봐요.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몰두하죠. 마흔이 넘은 무용수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3년은 더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는데 춤을 출 때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며 뛰는 것에 욕심을 버렸어요. 오래전에 어떤 나이 든 무용수가 한국 무용을 하는 걸 봤어요. 팔이 올라가는 데 1분이 걸려요. 가다가 팔이 탁 떨어지는데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분의 연륜이 자연스레 춤으로 보이는 거예요.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만큼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40대의 저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물론 뛸 수 있는 몸도 아니 지만.(웃음) 누구나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무대에 섰던 <쓰리 볼레로> 공연을 봤는데 유연한 동시에 민첩하고 힘이 있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상반된 모습을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춤인데 알아봐주셨네요. 춤은 결국 움직임의 미학이거든요. 역동적이면서 정적인 게 있어야 해요. 무하마드 알리가 한 말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감동을 주는 겁니다. 공연에서는 37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한 명도 흐트러짐 없이 보이게 연출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탁 터뜨려주자. 결국엔 통했죠.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9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전성기일 때 건너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떠나기 전까지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어요. 문화훈장을 받고 발레 하는 사람 중에 이름 있는 스타급이었죠. 그 정도 대우를 받다 보니 조금 거만했어요. 외국에 가보자며 국립발레단을 박차고 나갔는데 나가서 완전히 깨졌죠. 스포트라이트만 받던 인생인데 하루아침에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연습만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목표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결국에는 동양인 최초로 솔리스트 자리에 올랐어요. 노력이 통했네요. 단번에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저는 러시아 발레를 배웠는데 프랑스 발레와는 전혀 달라요. 파리지앵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프랑스 사람들은 굉장히 세련되고 도시적이에요. 반면 러시아 사람을 떠올리면 절도 있고 차가운 느낌이 들어요. 무용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파리오페라발레단 영상을 보니 이게 발레구나 싶었어요. 프랑스 발레가 배우고 싶어서 파리로 건너갔죠. 오랫동안 몸에 익힌 습관을 버리고 다시 춤을 정립한 건가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수습생 오디션을 보고 턱걸이로 올라갔어요. 파리가 좋아서 왔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못하겠더 라고요. 부딪히고 깨져서 5개월 뒤에 정단원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군무 자리도 안 주더라고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나날이었어요. 저도 한 성격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단원 중 5퍼센트만 외국인을 뽑는데 그중 제가 한 명이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그들도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 후 솔리스트로 승진했고 2009년까지 파리에서 보냈어요. ⓒ한용훈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춤출 때와 안무가로 일할 때 다른 점을 느끼나요? 무대에서 박수 받을 때의 쾌감은 똑같아요.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지는데 최고예요. 누구도 몰라요. 그것 때문에 발레를 그만둘 수 없어요.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싶은 거예요. 단순하지만 내 춤을 보고 그들이 기뻐하니까. 공연을 보고 잘 봤다는 말을 들을 때 그만한 감흥도 없죠. 안무도 마찬가지예요. 안무가의 의도를 관객이 느껴줄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몸을 다치면서 요즘에는 주로 안무를 하고 있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무대로 전환이 돼요. 그 순간에는 길을 걷든 차를 운전하든 멈춰요. 바로 그 타이밍이 있어요. 올 때 확 잡아야 해요. 음악에 맞춰 동작이 함께 떠오르고 어떻게 몸으로 표현할지 생각합니다. 춤에 알 맞은 주제를 담는 게 안무예요. 7월에 선보일 공연이 궁금합니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 스타 초청 공연> 예술감독을 3년째 맡았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공연을 선보이는데 올해 라인업이 굉장해요. 제가 소속된 김용걸댄스씨어터도 축하 공연으로 작품을 올려요. 소속된 무용수들이 바빠서 이번에는 제가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웃음) 직접 안무를 하고 무대에도 설 거예요. <오블리 비아떼Obliviate>란 2인극인데 음악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번에는 그 음악이 저를 당겼어요. 25년 동안 발레를 해온 발레리노에게 춤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몸은 움직이기 위한 구조로 돼 있어요.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퇴화해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안무가란 직업을 가진 저는 춤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항상 보던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무대에 올려놓으면 달라 보여요. 춤으로 표현할 때 무대에 있는 무용수와 객석에 있는 관객이 연결되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춤은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는 사람이니까 결국엔 춤은 사람이에요. 인간의 몸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몸은 포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거든요. 프랑스에 있을 때 친구들과 포옹하며 인사하는 ‘비쥬Bisous’를 참 좋아했어요. 아침에 친구들과 비쥬를 하면 정말 반갑거든요. 오랜만에 외국에서 제자들이 돌아오면 서로 안아 보자고 몸이 먼저 다가가요. 무대에서는 포옹 장면에 조명만 비춰도 사람들이 울어요. 그게 바로 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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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1.5평짜리 방에서 누린 최고의 자유.

독방에 갇힌 채 하루를 보냈다. 내 몸의 감각에 집중했고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1.5평짜리 방. 그곳에서 최고의 자유를 누렸다. 지난 주말에는 감옥에 갔다. 범죄를 저질렀거나 누군가를 면회 간 게 아니다. 내 발로 독방에 갇히길 자처했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진짜 감옥은 아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행복공장 내 안의 감 옥’은 감옥 콘셉트의 명상 공간이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짧게는 20시간, 길게는 40시간 넘게 독방에서 보낸다. 많고 많은 시설 중에서 왜 감옥일까. 행복공장을 지은 권용석, 노지향 부부는 현대인들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 권용석 씨는 오랫동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파묻혀 보냈다. 건강이 나빠지고 일에 지칠 때쯤 문득 감옥을 떠올렸다. 하루라도 독방에서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바람은 28개의 독방을 갖춘 ‘내 안의 감옥’으로 현실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감금을 전제로 하는 내 안의 감옥은 자율성을 가장 중시한다. 갇혀 있는 동안 방에서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나도 이 여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감옥에 도착해 사회에서의 마지막 밥을 먹었다. 조금만 더 먹을까 욕심이 났다. 수감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했다. 괜히 앞마당을 거닐며 햇살을 받고 바람을 쏘였다. 갇힌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일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이 좋은 날에 감방에 들어가기로 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오후 2시. 방으로 들어섰다. 세로로 긴 방에는 세면대와 화장실이 있었다. 다행이다. 이만 하면 웬만한 서울의 고시원보다 좋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큰 창이 있어 답답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짐을 풀고 휴대폰을 밖으로 내놨다. 이곳에선 책, 휴대폰, 전자기기의 반입이 일절 금지된다. 상사의 문자와 이메일, 허세 가득한 SNS와도 이별 이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달칵. 밖에서 문이 잠기며 속세와 완전히 단절됐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자 감옥에서 13년을 보낸 황대권은 한 평짜리 방안에 혼자 앉아 있으면 자기 몸밖에 갖고 놀 게 없다고 했다. 한 평짜리 방안에서는 내가 우주요,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이 내 몸의 일부로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독방에 들어오자 할 일이 없었다. 나는 그의 말처럼 가만히 누워 나를 장난감 삼아 놀기 시작했다. 온몸을 쭉 뻗어 방의 크기를 재보았다. 팔을 양옆으로 쫙 뻗자 벽에 손이 닿을 1.5평의 크기를 몸으로 익혔다. 집을 떠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머물던 시인 백석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가 말한 그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마침 내 방 앞에도 소나무가 보였다. 나는 오랜 시간 누워 나무와 창밖으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했다.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게 참 잘했다 싶었다. 해가 지고도 밝음의 기운은 오래 대지에 머물렀다. 깜깜해질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았다. 자연의 빛으로 시간을 짐작하고 하루를 소비했다. 변하는 공기의 온도를 느끼며 밤을 맞았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글을 썼다. 엇갈린 인연들에 대한 미련, 스스로에 대한 불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 등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푸닥거리하듯 글을 쓰며 응어리를 풀었다. 밤은 길었고 써야 할 말은 늘어갔다. 새벽이 되어서야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1시간에 한 번씩 울리는 종소리로 얼추 시간을 짐작했다. 오전 7시 30분. 문에 달린 구멍으로 아침 식사가 들어왔다. 지금 할 일은 먹는 일뿐이다. 오물오물 입안에 담긴 쌀죽을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죽이 달았다. 한 번에 하나의 행동만 하니 감각은 더욱 섬세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내 자신과 마주하며 철저하고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했다.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 속에 꼼짝없이 감금된 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고찰한다. 육체마저 감옥에 갇힌다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이중의 감금을 당한 영혼은 더한 고통을 겪거나 반대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갇혀야 드디어 깨닫는 것들이 있다. 비단 바깥의 공기, 햇살과 자유를 일컫는 게 아니다. 신체를 옭아매고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사회는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에 갇혀서야 나의 존재와 감각을 오롯이 느끼게 됐다. 육체가 영혼에게 감옥일지 천국일지는 몸을 쓰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오전 10시, 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나는 세상 속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제와 달리 인생의 수인囚人이 아닌 주인主人이 당당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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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 Behind

차를 마신다. 책을 읽는다. 서서히 취한다. 우리의 몸은 의자 위에서 정지한다.
단단하지만 편안한 나무 의자 위, 누군가 가만히 멈췄다 떠났다.

엉켜 있는 손가락에서 힌트를 얻은 카펠리니 스툴Cappellini Stool은 허먼 밀러 by 인노바드. 브라질산 로즈우드 테이블 3개로 이뤄진 요한네스 안데르센 작作 네스팅 테이블은 비투프로젝트 아르네 야곱슨의 첫번째 가구이자 유럽 디자인 거장들의 컬렉션 아이콘스ICONS 시리즈에 포 함된 파리 체어Paris Chair는 시카 디자인 by 에이치픽스. 1960년대 로얄 코펜하겐 빈티지 재떨이 는 모벨랩 티크 원목과 대나무로 만든 빈티지 티 트롤리는 모벨랩, 짙은 갈색 덴마크 빈티지 소서는 덴스크, 위스키 온더락스에 제격인 맨하튼 싱글 올드 패션드 글라스와 스페이 더블 올드 패션 드 글라스, 풍부한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소믈리에 꼬냑 XO 글라스는 모두 리델 by 대유라이프 1960년대 빈티지 티크 책상은 모벨랩, 이정은 작가가 만든 하얀색 화병은 세라믹 플로우, 윈저 공작 에게 경의를 표하며 제작한 로얄 메이페어 향수는 크리드, 크로니덴 니센 빈티지 컵과 소서는 덴스크, 클래식한 브루 드리퍼와 스테인리스 필터, 4컵 서버로 구성된 브루어 스탠드 세트는 에이치픽스 장인이 직접 다듬은 곡선이 유려한 호두나무 의자는 몽키넛, 세밀한 패턴의 러그는 하우스닥터 by 데이글로우 찰스&레이 임스 부부가 1960년대 디자인한 3개의 걸작 스툴 중 하나인 임스 월넛 스툴 411 Eames Walnut Stool 411은 허먼 밀러 by 인노바드 하얀색 유선형의 다기 세트는 쓰리코3,co by 서울번드, 다람쥐 오브제는 데이글로우, 바람이 불어오는 숲속 풍경을 표현한 포스터 The Wind No.4 – Olive Leaves 는 하일리 힐즈 by 데이글로우, 길죽한 코이 화병은 쓰리코 by 서울번드, 콘크리트로 빚은 듯 견고한 형태의 잿빛 화병은 하우스닥터 by 데이글로우, 코퍼 소재 의 오브제와 캔들 스틱은 모두 Klong by 덴스크, 까슬한 질감의 노란 페블 티팟은 쓰리코 by 서울번드, 50년대 디자인에서 모티프를 얻은 조인 67 테이블 램프는 힐로 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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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RAY

꽃과 나무와 바위와 집이 어우러져 휴식을 그려낼 뿐.

사야원 史野園 대구 산격동, 도시의 일상으로 번잡한 골목들 사이에 비밀의 정원이 있다. 300여 평에 달하는 사야원의 시작은 40년 전에 지어진 집이었다. 예술과 조경을 깊이 사랑하던 집주인은 본채 주변으로 일본식 정원과 한국식 정원, 별채를 조성했다. 일본 전통 조경가가 꾸민 정원에 건축가 승효상이 작은 다실을 더했다. 옛 석재를 다듬어 만든 나지막한 입구 안쪽으로 녹색 이끼와 노송, 계절을 알리는 꽃나무들, 잉어가 노니는 연못이 함께한다. 미레이 시게모리 가옥 Mirei Shigemori Residence 교토 대학 근처에 일본의 천재 조경가 미레이 시게모리가 말년을 보냈던 집이 있다. 20세기 중반 전성기를 누리며 일본 정원을 완전히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그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만든 정원이 거기 있다. 시코쿠에서 가져온 푸르스름한 바위들과 초록으로 빛나는 이끼, 모래 정원이 이루는 경관 너머로 시간에 따라 빛과 색채를 달리 하는 나무들이 말문을 막는다. 본채의 커다란 창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각도로 그 풍경을 가둔다. 치밀하게 계산된 정원은 보통 집의 객체가 되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에는 집이 정원을 위해 세워졌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조촐한 다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 미닫이문 사이로 쏟아지는 풍경은 그저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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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INSPIRATION

인간의 몸은 디자인의 좋은 원천이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디자인 제품들.

의자, 스탠드, 와인 따개, 향수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디자인은 사람의 몸을 흉내냈다. 일어서서 주방을 호령하거나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는 이들은 때론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 사람을 동물과 구별할 때 드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직립보행이다. 하지만 물건 중에서 도 직립, 즉 서 있는 것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도구들은 대부분 누워 있다. 주방의 식기들을 보라. 칼과 요리용 냄비, 프라이팬,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그릇과 접시. 서 있는 것들은 대체로 가구다. 사람들이 손으로 잡아서 다루는 도구들은 대부분 쓰임 뒤에 누워서 보관된다. 반면 뭔가를 담는 도구, 이를테면 옷을 담는 옷장, 책을 담는 책장, 사람을 담는 의자, 무언가를 올려놓는 테이블과 책상 등은 서 있다. 서 있으려면 다리를 가져야 한다. 다리를 가진 물건들은 사람을 흉내내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이 의자다. 의자는 사람의 몸과 가장 닮은 물건이다. 의자에는 다리가 있고 팔을 받치는 팔걸이, 엉덩이를 받치는 좌석, 등을 받치는 등받이 그리고 머리를 받치는 머리받이까지 완벽하게 신체와 일치한다. 의자란 사람과 가장 오랫동안 밀착하고 있는 사물인 만큼 단순한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에서 시작해 안락한 사무용 의자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사람의 신체를 닮아갔다. 아예 사람 몸처럼 디자인한 의자도 더러 볼 수 있는데, 유명한 것 중에는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이 디자인한 ‘W 스툴’과 파비오 노벰브레Fabio Novembre의 ‘힘&허Him&Her’가 있다. W 스툴은 인체를 추상화했고, 힘&허는 몸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는데, 공통점은 둘 다 에로틱 하다는 거다. 디자인에서 유용성보다 유희성을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팝 디자인 시 대에는 특히 인체로부터 영감을 받은 의자가 많이 탄생했다. 올리비에 무그 olivier mourgue의 ‘볼룸Bouloum’, 피에르 폴랭Pierre Poulin의 ‘혀Tongue’, 가에타노 페세 Gaetano Pesce의 ‘업 시리즈’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팝 아티스트 앨런 존스가 만든 여성 신체를 이용한 의자와 테이블만큼 충격적인 건 없다. 이 의자와 테이블은 여성을 가학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섬뜩하다. 이처럼 의자란 의인화하기 아주 쉬운 물건이다. 다리와 상판으로 이루어진 기본 구조가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테이블은 네 개의 다리로 상판을 받치기 때문에 사람보다는 동물을 닮았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테이블처럼 생긴 오토만(의자에 앉은 채 다 리를 뻗어 올려놓는 가구)이 강아지로 묘사되는 것처럼 동물로 의인화된 테이블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은 빈 의자를 볼 때 종종 쓸쓸함을 느끼는데, 그만큼 사람과 의자는 친밀한 것이다. 빈 테이블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탁상 조명을 ‘스탠드stand’라고 부른다. 탁상 조명도 서 있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대표적인 탁상 조명은 ‘앵글포이즈Anglepoise’다. 이 조명은 영국의 조지 카워딘 George Carwardine이 1930년대 초반에 디자인했다. 이 조명의 가장 큰 특징은 조명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조명이 나오기 전에는 자유롭게 갓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탁상 조명은 그냥 단순히 직립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조명이 태어남으로써 조명 갓은 감옥에서 해방됐다. 조지 카워딘은 사람의 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팔이 관절 때문에 마치 공사장의 굴착기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조명도 그렇게 할 수 없을까 고민 하다가 앵글포이즈를 디자인했다. 이런 형식의 각도 조절 조명은 거의 전 세계 모든 가정과 사무실 책상 위의 필수품이 되었다. 픽사의 존 래시터John Lasseter는 <토이 스토리>로 대박을 터뜨리기 전 <룩소 주니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룩소’라는 이름의 각도 조절 조명은 사람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신체와 그만큼 닮았다는 걸 입증한다. 결국 이 조명은 유명한 픽사 로고의 아이(i) 자가 되었다. 대부분 도구가 쓰인 뒤에 서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사용이 끝나고도 떳떳하게 서 있는 물건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와인 오프너 ‘안나 G’와 레몬즙 짜개 ‘쥬시 살리프’가 대표적이다.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은 우월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 유럽의 군주들은 대개 두 다리를 땅에 굳건히 딛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초상화를 남겼다. 마찬가지로 누워 있어야 할 주방 도구들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물건을 디자인한 사람들은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 필립 스탁으로 이른바 슈퍼 디자이너다. 안나 G와 쥬시 살리프Juicy Salif는 그들의 자식인 셈이다. 일종의 금수저인 이 도구들은 특별한 취급을 받 게 된다. 슈퍼 디자이너들이 오만하게도 기껏해야 와인 코르크나 따고 레몬 즙이나 짜내는 도구를 예술의 경지로 이르게 한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왕정 시대의 군주처럼 꼿꼿이 서 있게 디자인함으로써 이것들이 사람 눈에 뜨이는 공간에 놓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이들은 대개 장식용 접시처럼 장식장이 마치 미술관인 듯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을 흉내내는 도구들 역시 슈퍼 디자이너만큼 오만하기 그지없어서 자기들을 예술 작품으로 착각한 채 일은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단지 감상하기만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액체를 담는 용기 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코카콜라 병과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향수병이 대표적이다. 병이라는 사물도 직립한다는 점에서 사람 몸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병목이라는 표현도 인체에서 따온 것이다. 병의 윤곽에 살짝 굴곡을 주면 여성성을 단숨에 획득한다. 알렉산더 사무엘슨Alexander Samuelson이 디자인한 코카콜라 병이 여기에 해당한다. 밋밋한 병에 굴곡을 주어 가슴과 허리, 다리로 일종의 경계와 구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의인화가 완성되었다. 장 폴 고티에 향수병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구체적으로 여성의 몸을 형상화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향수는 고가이므로 이런 병은 다 써도 버리기 아까울 것이다. 고티에 향수병은 다양한 옷을 입은 버전을 내놓아 컬렉션 욕구를 자극한다. 실용적인 용기에서 감상용 오브제로의 변신이다. 사람 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도구란 두 가지 운명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앵글포이즈 램프나 사무용 의자처럼 일 잘하는 경우가 그 하나다. 또 다른 운명은 몸의 기능성보다 형식성을 흉내 내 숭배를 강요하는 경우다. 이는 마치 사람의 계급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람도 노동만 죽도록 하는 운명이 있고, 일하지 않고도 사랑받는 부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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